강물 소리

지은이 임장영 쪽수 192쪽
초판 2018-03-05 ISBN 979-11-6054-132-8
판형 145*225mm 기타
  • ()라고 하기에는 너무 자신이 없어서 나는 짧은 글이라는 용어를 쓴다. 부족한 사람이 생업 외 사색을 할 수 있었던 원천을 한마디로 표현하라면 그리움 그런 것이었다. 죄스러움과 사죄 그리고 사랑, 회한의 조각들이었다. 짧은 글로 표현된 파편들 속에 불량품의 노랫소리가 걸리어있다.

    어머니와 아내가 보듬고 삭혀 흘려보낸 내 억지를 말로는 다하기가 부끄러운 수준이다. 어머니와 아내는 내 인생의 강줄기였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 와서 눈 감추는 남자에게 강은 말없이 눈물을 닦아주고 가슴을 씻어주었다.

     

    이제 내 나이 환갑이 넘어 한없는 그리움으로 여인의 노랫소리, 강이 흐르는 소리를 마음속에 담고 강물 따라 바다로 간다. 인간은 한 번은 죽는 것. 조금 일찍 가고 뒤에 가는 차이려니 다독이면서 소리 내어 울고 싶을 때도 있다.

     

    나 먼저 저 세상 간 김명자의 영전에,

    불효막심 아들이 우리 어머니 영전에,

    용서를 빌며 이 마음을 바칩니다. 또 그분들이 사랑했던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이 책을 바칩니다.

  • 책을 시작하면서

     

    강물소리 | 백록담 | 천안삼거리 | 어머니와 아내 | 촛불 | 이 도시에서 | 관악산 바위에 누워 | 비야 바람아 | 하늘 아래 | 제사상 앞에서 | 어머니 하늘로 가시다 | 어머니 향기 | 어머니의 섬 | 어느 생일날 | 재혼하다 | 바다와 하늘과 들판 | 전설과 신화 | 자기학대, 운명에 대한 반항 | 海岩 | 뻐꾸기가 운다 | 남창장날 | 개구리의 꿈 | 살구꽃은 날리고 | 미안해요 | 미안합니다 | 제주항 | 완도항 | 여자가 위대한 이유 | 걱정하지 마 | 여인이여 | 여행과 추억 | 새벽 땅끝바다에 서서 | 나는 대관령을 넘는다 | 경포대에서 | 미시령 길 | 소양강 댐 | 서귀포 남원읍 아침 바다 | 해남읍 장날 | 고도리 버스정류장 | 농부는 밭을 탓하지 않는다 | 대흥사 종소리 | 여명 황혼 | 산은 알고 있다 | 굽은 소나무 | 불량품의 노래 | 上京記 | 촌놈 | 내가 좋은 것들 | 설날이 가까워 오네 | 묵동에 산다 | 눈 내리는 묵동 들판 | 가을냄새 | 있는 그대로 | 위대한 탄생 | 희망가를 부른다 | 희망 | 나의 사계절 | 귀향 | 어머니 | 목포갈매기 | 국민학교 동창회 | 플라타너스 | 오월의 노래 | 파도는 꿈을 꾸러 가라 한다 | 아들에게 | 젊은 골퍼에게 | 상여소리 | 태양이 아름답다고 말할게 | 내 상여소리 | 시월이 가면 | 겨울남자 | 오월의 아침 | 4월의 노래 | 가로등 연가 | 보리피리 | 기다림 | 기다림 2 | 기다림 3 | 가을이 오면 | 가을은 바람을 타고 | 추석 보름달이 뜬다 | 십오야 | 손잡고 걷고 싶다 | 나그네 | 남자의 어머니 | 이별 연습 | 마늘밭 향기 | | 산속의 아침 | 설악산 대청봉 | 지리산 천왕봉 | | 아침 산이 말한다 | 한라봉 | 한라산의 아침과 석양 | 현충일의 무등산 | 땅끝대로 | 서른네 살 | 봄안개 | 젊은 날로 갑니다 | 바닷가 아이들 | 남자의 눈물 | 안녕 | 젊은 아파트 | 친구야 | 낯설음 속으로 | 효정(曉庭) | 찻집에서 | 목이 메 울먹였다 | 골프장에서 | 나쁜역사 | , 노무현 | 새해 아침 | 海南 | 북평면가 | 면장님 면장님 | 전봇대 위의 까치집 | 가출의 변 | 민경이가 시집간다 | 8월 농촌일기 | 9월 농촌일기 | 밀물 썰물 | 무언(無言) | 성황당 | 세상 속으로 | 비 오는 날의 대흥사 길 | 나의 미황사 | 선운사 | 운주사 | 정적(靜寂) | 달마산 연가 | 통곡 | 그대의 마당 | | 이른 아침 | 삼천포에는 | 대흥사 큰스님 | 편지

     

    책을 엮고 나서 

  • 임장영

     

    1955. 11. 27(음력). 전남 해남군 북평면 서홍리 묵동에서 가난한 농부의 32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북평남초등학교, 광주동성중학교, 광주상업고등학교, 광주대학교에서 공부하였다.

    학창 시절, 장래 문화예술 분야로 진출하기를 바라는 선생님들의 권유를 뿌리치고 돈을 많이 벌어 정치인이 되겠다는, 알고 보니 팔자에 없는 꿈을 꾸며 날이 넘었었다. 중소기업은행에 재직하였으며 1985년 퇴사 후 자영업을 시작하였으나 아내가 세상을 떠나자 사업을 접고 1992년 귀향하여 지금까지 고향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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